필경사 바틀비-Bartleby, the Scrivener
이 글을 간략히 세 부분으로 나누어 써내려가려 한다.
1.필경사
2.바틀비
3.관성
1.필경사
필경사, Scrivener.
현재는 없는 직업이다.
필사가 주 업무이고,
이 책에서 주인공 바틀비는 변호사 사무실에서 계약서류 등을 필사한다.
단순히 바틀비의 이야기만으로도 생각할 거리가 많은 이 책은, 없어진 직업이라는 하나의 소재로도 할 말이 많다.
AI로의 대전환 앞에 놓인 현시대에서 나는 최근 앞서 삶을 살아온 선배들에 대해 다시 생각한다.
1995년생인 나는 2026년 현재까지 살아오면서 일상적인 기술을 따라가기 어렵다고 생각한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그렇기에 아주 오만하게도
현직에 있으면서 독수리타법을 쓴다던가 타자가 아주 느린 선배들을 보며
그렇게 많은 세월, 심지어 나보다도 더 많은 세월을 키보드와 씨름하셨을 건데 왜 나보다도 타자를 느리게 치실까 하는 무의식적인 의문을 가지고 있었다.
나는 그렇지 않은데.. 하며
돌이켜 보았을 때
내 인생에서 혁신이다 라고 부를만한 것은 스마트폰 뿐이었고
이마저도 고등학생때 접하면서 아주 빠르게 적응해나갔다.
키오스크는 사실 아직 불편하긴 하지만
적응하지 못한 나의 문제라기보다
조잡한 UI 탓이 크다고 생각한다.
그런 내 삶에 드디어 따라잡기 벅찬, 도태될 것이 빤히 보이는 AI라는 것이 등장했다.
미래가 살짝 그려진다.
나보다도 키보드를 오래 두들긴 선배들과 달리 피아니스트마냥 키보드를 잘 다루는 나처럼,
2026년 AI가 있는 현재 태어난 아이들이
AI가 범용으로 배포되고 쭈욱 써갔을 나보다
훨씬 능숙하게 사용할 그 미래가 너무나 빤하다.
그리고 현재 내 업무를 하는 사람들의 절반 이상은 없어질 것이고 그 안에 내가 섞여들어갈 수도 있다.
절반 이상이 될 수도 있고 잘리지 않는 것이 굉장히 운이 좋은 상황이 될 수도 있다.
그렇다면 현재 내 직업도 과거의 필경사같이 어쩌면 역사적인 어떤 것이 될 수도 있는 것이다.
2.바틀비
바틀비는 변호사 사무실에 취직을 한다.
처음에는 변호사 마음에 쏙 들게 일을 잘한다.
바틀비보다 먼저 고용된 다른 두 필경사는 각각 오전, 오후에 일에 집중을 못 하는데
바틀비는 오전, 오후 모두 일에 집중을 잘 하며
사무실을 떠나지도 않고 글씨도 이쁘게 고용주 마음에 들게 일을 잘 한다.
그리고 그 고질병이 시작된다.
I would prefer not to.
시작은 교차검증 작업이었다.
필사하는 직업이고 사람이 하는 업이니만큼 베껴쓰는 데에 실수가 없을 수가 없고, 그 실수를 최대한 줄이기 위한, 필경사 직무에 반드시 포함되었을 일인 교차검증.
이 이야기의 서술자인 고용주, 변호사는 교차검증을 위해 바틀비를 부른다.
한 사람이 읊으면
다른 한 사람이 눈으로 읽으며 검토하는 작업이다.
그 자리에서 바틀비는 이렇게 말한다.
I would prefer not to.
전 그러지 않는 편이 좋습니다.
당연히 변호사는 처음에 노발대발했다.
하지만 바틀비는 굽히지 않았고
검토가 급했던 변호사는 다른 필경사를 불러 급한 불을 끈다.
이후에 교차검증 작업에 대해서 바틀비는 계속 같은 대답만을 유지하고
변호사는 교차검증이 필요할 때 다른 필경사를 부른다.
그리고 바틀비는, 교차검증 뿐만이 아닌 다른 업무에서도 점차 본인의 태도를 확대시킨다.
우체국 방문좀 해.
I would prefer not to.
자네 필사도 안 할 것인가?
I would prefer not to.
급기야 본인의 의무마저 저버리는데 변호사는 바틀비를 납득시키는 그 모든 시도를 실패한다.
이 이야기는 여기서 끝이 아니지만
줄거리는 여기까지만 적도록 한다.
3.관성
바틀비는 왜 그랬을까?
여럿이서 이야기 해 볼 수 있는 기회가 있었다.
다른 여러 가능성들이 나왔지만 나는 관성에 초점을 둔다.
혹시 소위 말하는 갓생을 살아본 적이 있는가?
나는 있다.
굉장히 성취감있는 여러가지 일을 같은 시기에 하며 부지런한 삶을 살아가는 것을 흔히 갓생산다 라고 이야기한다.
바쁘게 이것저것을 하면 많이들
고생이다, 대단하다, 어떻게 그렇게 바쁘게 사냐, 안힘드냐라는
라고 말을 하지만
사실 반대다.
오히려 삶이 더 윤택해지고 재밌다.
그리고 무언가 하나를 하는 것이
다른 하나를 하는 것에 대한 동력이 되어서,
구르기 시작한 자전거를 굴리는 것은 별로 힘들지 않듯
운동마찰만 극복하면 된다.
그러나 아무것도 하지 않는 삶은 힘들다.
이미 삶을 사는 것 그 자체로 지치게 된다.
거기서 무언가 하나를 시작하는 일은 배로 힘들어진다.
정지마찰까지 극복해야하는 것이다.
바틀비도 처음엔 취직이라는 것을 했다.
그리고 변호사가 다른 두 필경사보다 훨씬 낫고 채용하길 잘했다고 자찬까지 할 정도였다.
그러다 교차검증 업무에서 손을 떼었다.
우체국에 방문하는 것도 하지 않았다.
주업무인 필사조차도 하지 않게 되었다.
정지관성에 말린 그는 그저 멈추게 되었다.
최근 내 주변에 본인을 저 굴레에 밀어넣는 사람이 생겼다.
인복이 있는 사람인지라 주변 모두가 걱정을 하며 구렁텅이에서 건져놓았다.
그런데 남이 아무리 다리를 굴려준들 무슨 소용일까
결국 본인이 젓지 않으면 자전거는 앞으로 굴러가지 않는다.
남이 저어주는 것은 인생에서 아주 잠시의 시간이다.
알아도 못 할수도 있지만
때론 당연한 것을 알고있다고 인지하는 것 만으로 힘이 될 때가 있다.
그냥 삶이 그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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